믿음과 의식을 포착하라. 정확한 언어로...
(출처 : 인재경영 2019년 3월호 )
주의(Attention)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는 AI 스피커는, 사용자가 말하는 내용이 길어지면 그 정확도가 떨어지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차용하고 있는 언어 모델의 특징에 있다. 언어의 입력 순서에 따라 내용을 인식하는 유형이어서 처음 입력한 단어는 뒤로 갈수록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반면, 다른 언어 모델은 ‘주의(Attention)’를 활용한다. 앞의 모델과 같이 언어가 입력된 순서대로 인식하는 대신, 전체 입력된 내용중에 중요한 단어를 포착하고 집중하여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분석한다고 한다. 중요한 단어들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며 학습하고 사용자의 발화 의도와 문맥 분석에 집중하며 학습을 거듭한다. 한 업체의 딥러닝 아키텍처가 이 ‘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리더십에도 이와 유사한 주장이 있다. 넘쳐나는 많은 정보들 중에서 중요한 이슈에 주의를 집중하고 정의하여 자원을 할당하는 능력이 리더십의 한 유형이라고 한다. 백기복 교수는 최근 한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이슈 리더십이론에서 리더란, 구성원들의 주의를 생산적 이슈에 집중시켜 기대 이상의 성과를 창출하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사람의 주의 자원은 원자재나 자금처럼 유한하기 때문에 리더는 구성원들의 주의 자원이 엉뚱한 이슈에 투자돼 낭비되거나, 특정 이슈에 지나치게 집중해 고갈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영학자 윌리엄 오카시오는 1997년 논문에서 경영의 본질을 ‘주의 자원(Attention Resource)’의 적절한 배분에 있다고 설파했다. 조직의 주요 의사결정자들이 주의라는 자원을 어떤 이슈나 문제에 투자하느냐가 궁극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일반 AI 언어 모델처럼 모든 사항에 대하여 동일한 비중의 의미를 두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언어 모델과 같이 핵심적인 이슈를 파악하거나 의제를 설정하여 자원과 모든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리더십이 효과적이다. 또한, 리더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직 구성원의 주의에도 관심이 필요할 것이다.
알고리즘과 제한된 합리성
유발 하라리는 미래를 예측하는 책에서, 자유의지는 존재하지 않고 욕망을 선택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욕망을 느끼고 그것에 따라 행동할 뿐이라고 한다. 현실은 의식의 흐름만 존재하고 욕망은 그 흐름안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질 뿐이라고 주장한다. 인간은 그동안 감정이라는 알고리즘에 기대어 왔는데 이제부터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알고리즘이 모든 것을 설명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그 알고리즘은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고 스스로 진화할 것이라고 한다. 지금, 지능과 의식은 분리되고 있고, 의식은 없으나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들이 곧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빼먹지 않는다.
동의하지 못하는 주장이 많으나 시사하는 바는 크다. 거대한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예측하거나 최적의 효율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의 감정, 행동, 생각의 흐름이 객관화되고 기록될 수 있고 선택의 결과도 예측 가능할 것이다.
한편, 우리의 현재를 잘 설명하는 이론이 있다. 의사결정자는 합리성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인지, 심리, 환경적 제약 등으로 인해 합리성이 제한된다. 그래서 제한된 합리성 모델에서는 의사결정을 최적의 대안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관리자들이 현실적으로 만족스러운 대안을 선택하는 과정으로 가정한다. 이에 의하면 관리자들은 능력부족이나 시간의 제약 등으로 인해 모든 대안을 검토하지 않고 단순한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며, 또한 정신적인 소모를 줄이기 위해 과거 경험에 기반을 두고 어림잡는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기도 한다. 197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Simon, H)이 제시한 의사결정 모형으로 관리자(Administrative Man) 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제한된 합리성은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제한된 상태에서 가급적 합리적인 과정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것을 의미한다.(두산백과)
여기서 이야기하는 과거의 경험, 인지, 심리, 환경적 제약 등이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는 지능 혹은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과 유사할 것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최고의사결정자의 의사결정 과정을 잘 설명하는 것 같다. 역시 조직 구성원 전체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최고 경영자의 주의와 믿음을 정의하자
‘우리는 팀이지 가족이 아니다. 가족은 구성원을 조건 없이 사랑한다. 그러나 팀 구성원은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고 최고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오지 못하면 떠나야 한다’로 유명한 넷플릭스. 1997년 창업, 급성장했다. 창업 당시 시장의 지배자는 막강한 비디오 대여점 체인망을 보유한 ‘블록버스터’였다. 미국 전역에 9,000개 매장과 4,0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넷플릭스가 성장하는 동안 블록버스터는 여전히 오프라인에 집중하다 2006년에 온라인의 중요성을 파악하여 온라인과 통합한 서비스를 출시하였다. 넷플릭스로서는 큰 위기였다. 그러나 2007년 블록버스터에 새로 영입된 CEO가 넷플릭스의 위기를 해결해 주었다. 그의 사업에 대한 믿음은 오프라인에 집중하는 것이었고, 모든 자원을 오프라인 확장에 집중하였으며 그 결과 2010년 파산신청을 했다. 최고의사결정자의 믿음과 과거의 경험, 주의가 이런 안 좋은 결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믿음이 조직 운영을 다르게 한다. 아시아 최대의 저비용항공사(LCC) 에어 아시아와 미국의 저비용항공사인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의 인사제도는 전혀 다르다. 전형적인 미국식 개인 성과와 직무기반의 보상을 택하는 것은 에어 아시아이고, 집단성과와 역할 중심 보상을 택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 미국의 사우스웨스트 에어라인이다. 각 조직 최고경영자의 믿음이 제도를 달리 만들었다. 이런 대비 사례는 자주 발견되고 그래서 최고경영자의 의식을 파악하고 믿음체계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이 인사담당에게는 몹시 중요하다. 미국 유명 패션 브랜드 ODM 생산으로 성장하는 국내의 한 패션 제조업의 최고경영자의 믿음도 독특하다. 구성원의 성장을 지원하면서도 본인의 성장 경험과 산업특성에 근거하여, 전체 구성원의 성장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되 기본급보다는 성과급을 중시한다. 회사의 총 연봉 수준은 늘 업계 최고 수준이다. 다른 유사 업체는 기본급을 비교적 높게 설정하고 성과급은 다소 낮다.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경쟁 업체와 유사한 보상구조를 제안하여 도입하였으나, 보상 비중은 최고경영자의 의도대로 설계되었다. 동시에 이 최고경영자는 비정상적인 관행이라고 판단하는 영역은 고집스럽게 원칙을 지킨다. 구성원간 형평성, 근무시간, 업무의 질, 기본예절 등에 대한 집착은 제품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까다롭게 챙긴다. 영업이익률은 여전히 업계 최고이며 조직 몰입도와 이직률도 만족할 만하게 운영되고 있다. 그의 믿음과 주의로 성과를 내고 있다.
구성원의 인식은 더욱 중요하다
최고경영자뿐만 아니라 조직 구성원의 의식도 우리가 집중하여야할 영역이다. 최근 국내에서 최고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조직 구성원의 의식조사 설문 결과가 이상하게 나와 해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프로젝트에 초청되었다. 창사 이래 최고 실적과 취업 선호도 상위, 총 보상 수준이 국내 최고임에도, 그룹 계열사 내에서도 몰입도 의식조사 수준이 낮게 나와 대책이 필요하였다. 포괄적인 설문조사와 인터뷰로 다양한 인과와 상관을 찾아내고 개선 계획을 세워야한다. 과거 어려운 시간을 인내하며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없을 성과를 창출하였으나 구성원 기대에 못 미치는 보상과 누적된 불공정 인식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가설이다. 기존에도 이런 조사 결과는 있었으나 다른 불만족 요소들이 상대적으로 커서 간과된 부분이었다. 다른 불만족 요소가 지속적으로 개선된 이후, 다른 불만족 요소들이 노정된 것이다. 구성원의 의식의 흐름과 변화, 현재의 의식에 대한 프로젝트이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 연구소의 조직 운영 개선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구성원 대부분이 기계공학과 화학계열의 전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조직 구성도 두 전공 조직으로 양분되어 있었다. 두 기능을 합쳐 하나의 집합체로서 제품이 완성되는 구조여서 두 기능 간 협업이 매우 중요했다. 지속적으로 경쟁력이 낮아져 조직운영 개선 방안을 찾으려고 국내 경쟁사 연구소와 해외 기업 연구소 조직을 조사하였더니, 이 회사와 다른 구조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조직이 두 전공을 혼합하여 제품/고객별 연구 조직을 운영하고 있었다. 다소 혼란스럽고 관리가 까다로운 매트릭스 조직이었으나 시장 정보의 수집이나 생산 효율성 제고 수준이 기능별 연구조직보다 높았다. 그래서 조직 구조를 변경하고 운영시스템을 개선하자고 제안하였는데, 받아들여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전공별 사일로(SILO) 현상이 워낙 오래 되어, 제안한 조직은 운영이 불가능하며 누가 리더가 되는가에 따라 운영이 힘들 것이라고 많은 구성원이 반대하여 전개에 어려움이 있었다. 같은 전공 졸업자가 이 조직에 오면 이 연구소 선배의 믿음을 따라가고 경쟁 조직에 가면 다른 믿음을 갖게 되고 있었다.
인사담당이 해야 할 일 – 의식을 포착하자, 정확한 언어로
피터 드러커는 경영자의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가 사업을 끊임없이 정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 사업 정의가 최고경영자의 일이라면 인사담당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의식을 정의하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의 믿음과 가설체계, 구성원 의식의 수준과 변화 흐름을 체계화하여 수집하고 보고하는 것이다. 설령 우리가 ‘블록버스터’의 최고 경영자를 보좌하더라도 그의 믿음을 정의하고 최적의 인사 운영을 제안하고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다. 최고경영자의 제한된 합리성이 우리가 복무하여야 할 영역인 것이다. 물론 우리는 최고경영자가 ‘넷플릭스’와 같기를 바란다.
반면, 구성원은 개인이자 집단이므로 좀 더 복잡하고 정교한 장치가 필요하다. 과거와의 의식 차이와, 같은 시기의 외부 조직과의 비교 등을 통하여 우리의 과제를 설정하여야 한다. 우리 조직의 알고리즘을 확인하고 데이터를 마련하여 제도와 관행 개선을 통한 개입 방법을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은 정확한 언어로 포착하여 정리하여야 할 것이다. 칼의 노래와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의 에세이에서 정리하는 일과 언어 채택의 중요성을 찾을 수 있다.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 그걸 뒤죽박죽으로 말을 하니까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할 수 없는 것이고…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 놨어요….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최고경영자와 주의에 관심을 기울임과 동시에, 구성원의 의식과 믿음을 주기적으로 수집하여 사실적인 언어로 보고하고, 정확한 의견과 정서를 전개하는 역량이 우리 인사담당에게 필요하다.
인싸이트그룹
오승훈 대표